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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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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60회 수상자

특별상 최재형 가문 러시아 연해주를 근거로 한 항일 독립운동의 선구자

최재형 선생은 1860년대 후반 조선에 큰 흉년이 들어 가족을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주 후에 그는 러시아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두루 돌아다닌 뒤에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9년 3·1운동 등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둘러싸고 전개된 20세기 초반의 국내외적인 격량의 세월 속에서 한 시대를 헤쳐나간 풍운아이자, 기업인,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은 1880년대 러시아에 귀화한 뒤 그 지역의 한인자치기구의 책임자인 도헌과 러시아 내 조선인 중 최고 부를 일군 기업인으로 성장하여 재러 한인 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였으며,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가장 신망을 받은 친러인사였다. 그는 1905년 이후 독립군에게 군자금과 러시아 신무기를 전 재산을 사용하여 공급하고, 1908년에는 동의회를 조직하여 국내로의 진공작전을 지휘했다. 또한,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의 배후에서 자금과 무기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안중근 의사의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으며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주는 등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되던 『대동공보』가 재정난으로 폐간되자 이를 맡아 재발행, 격렬한 논조로 일제를 규탄하고 독립의 당위를 주장했다. 또한 노우키예프스크 ‘한족민회’회장에 취임해 교포 자녀들을 위한 한인학교를 설립했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그 해 11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본부를 둔 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1920년 4월 일본은 ‘니항사건’을 빌미로 연해주 일대에 출병하여 시베리아 혁명군과 한인 의병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1920년 4월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연해주 흑룡강에서 전개된 일본군의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 작전 때 지금의 우수리스크에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재판도 없이 같은 해 4월 7일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과 함께 총살당해 순국했다.


그의 아들 최성학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자녀들과 사위 등 다수는 1937년 강제 이주 시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형 선생은 가난을 이겨내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었지만,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지 않았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기꺼이 전 재산과 목숨을 바친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3·1문화상 특별상을 수여한다.